내가 좌파에서 우파로 옮긴 이유
1. 난 40대 후반까지는 경제적 어려움에서 탈출하고자 오직 일하고 돈버는 일 밖에는 관심이 없었다.
2. 대학때 이후 좌파에 세뇌되어 그저 민주화라는 타이틀만 붙이면 좋은 줄 알았다.
3. 역사에 관심이 깊어서 40대 10년간 매우 많은 책을 읽었다. 일본역사를 찬찬히 들여다 보니 우리가 배웠던 것은 다 거짓말이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전부터 강대국이었고, 임진왜란 이전부터 국력이 우리를 앞질렀었다.
->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니 우리의 역사교육에 대해 엄청난 배신감이 들었다.

4. 조선의 역사를 살펴보니 우리가 배운게 다 거짓말이었다. 조선후기는 그야말로 국가라고는 말할수도 없는 거지꼴이었고, 고종은 천하에 한심한 쫌생이에다가 뇌물받고 매관매직하는 인간이었다. 한일합병에 나몰라라 하면서 신하들에게 알아서 하라고 떠넘긴 인간이었다. 그뒤로 그 왕족들은 일본에서 엄청난 돈과 작위를 받고 호의호식하였다.
-> 졸라 배신감이 들었다.
5. 식민지 시기 35년간은 아프리카만도 못한 조선의 상황이 비약적으로 나아졌고, 인구가 급증하였다. "이게 다 일본이 즈그들 좋으라고 한것이지 조선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지만 어쨌든 발전했다.
"회사가 우리에게 월급주는게 우리를 진정 위해서 그런건줄 알아? 다 회사 좋으라고 하는 짓이여"라는 말과 같다. 이 세상에 남 좋으라고 무조건 이타적으로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냥 그 사람과 같이 지내는게 나한테 좋은 일이었으면 된거다.
"철도깔고 댐 건설하고 그런 건 다 조선의 물자를 수탈하기 위한 거야~ 강도가 물건 빼내가기 좋으라고 바닥에 도르레 설치한거나 같지"라는 말도 있는데 당시에 조선에서 뭐 수탈할 거리가 있었나? 오히려 조선총독부는 35년간의 재정이 적자였고 일본 본토에서 엄청난 자금을 끌어서 썼다.
그리고 일본은 조선을 스코틀랜드처럼 영구합병하려고 했기에 마냥 착취만 한다는 것은 합리적인 생각이 아니었다. 철도 깔고 사회간접 자본을 설치하는등 대대적인 재개발 사업을 시행한 것이다. 나중에 본전도 못받고 쫓겨난다.
6. 군산에서 쌀을 강제수탈했다고 배웠는데 수탈이 아니라 수출이었다. 돈받고 판거다. 그것때문에 일본내 농민들이 살기 힘들어 데모했다는 신문기사도 있다. 우리가 배운 역사는 다 거짓이었다.
7. 위안부를 헌병대가 끌고 갔다고 해서 이런 저런 자료를 들춰보니 그런 증거가 없다.
오히려 일제시대 발행된 조선일보 동아일보에 조선인 인신매매범 약취범들을 일본경찰이 단속한다는 기사가 버젓이 나와 있다.
위안부를 관리하며 일본 부대를 따라다니는 업자들은 대부분 조선인 남자들이었다. 그냥 동두천 등 기지촌의 양공주라고 보면 된다. 조선인 업자들이 돈벌려고 하는것을 일본 군부가 그냥 방치했을 뿐이다.
8. 이러한 피해의식은 어디서 왔을까 고민해보니, 그게 다 조선 후기의 극심한 상황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공업은 발달하지 못했고 농민들은 유랑걸식했고 노비들의 인생은 아무런 보람이나 희망이 없었다. 소작농들은 거의 대부분의 수확을 양반에게 빼앗겼다. 그런 상황에서 남탓 원망 피해의식이 싹틀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좌파들은 모두 일본탓이라고 했다.
9. 안중근도 꽤 어이없는 인물이었다. 그와 그의 선조들은 동학운동에 반대하고 진압에 가담했으며, 이등박문이 고메이 천황의 말을 잘 안들었다는 등의 이유를 들면서 그를 암살했다.
10. 박정희에 대해 연구해보니 그가 없었으면 오늘의 한국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독재로 인한 폐해도 있었으나 그게 10이라면 그의 공은 100을 넘어 1000에 가까웠다.
11. 전라도에서는 신적인 존재로 여겨지던 김대중은 북한 핵개발의 결정적인 공로자 였다.
12. 작은 회사를 경영하면서 키워가다 보니, 조직의 발전에는 종업원들의 피와 땀도 필요하지만 지도자의 역량이 결정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직원들의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고 그것을 어느 방향으로 이끄냐에 따라 그 결과는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같은 민족인 북한 사람들이 열심히 일할 태세가 안되어 있었을까? 그러나 지도체제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았나?
13. 구멍가게를 이끌 때에는 그저 직원들에게 잘해주고 민주적으로 대하면 잘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인간의 이기심은 재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말단 직원들도 어마어마하게 가지고 있고 오히려 그들은 더더욱 무책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때때로 강력하고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였다. 그들이 하자는 대로 했다가 배가 산으로 가는 경험을 많이 하였다. 주변의 사장들과 대화해보니, 사장 개인의 역량과 판단이 정말로 중요하였다.
14. 박정희의 경제발전과정을 보니 그는 만주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워온 것으로 보였다. 만주는 당시 꿈과 희망과 야망이 넘치는 신생국이었다. 일본은 만주국에서 경제발전의 모든 실험을 다 하였다. 박정희가 그것을 배워와서 한국에 그대로 이식한 것이다. 박정희의 만주경험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은 없었다.
15. 한국인들은 꽤 거짓말을 잘하고 감정적이고 충동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의 사기죄 고소고발 비율은 인구비율로 볼때 일본의 150배에 이른다.
한국어에는 전투적인 표현이 많고, 상대방을 이겨먹고 상대를 무시하고 조롱하는 표현이 많았다. 상황을 과장하고, 자신의 선의만 강조하고 결과에 이르는 경과과정에는 무심하였다. 모든 걸 남탓으로 여겼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여 문화산업에서 대박을 이룬다. 억압과 피해의 경험이 위대한 문학으로 승화되는것과 같다.
다만 문제는, 먹고살만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피해의식을 자극하여 나라가 피곤해지고 지금까지의 경제성장 과실을 다 갉아먹는다는 거다.
이제 망할수 있는 절호의 챤스가 왔다. 하강할때가 되었다)
16. 대학 때 운동권 뒷꽁무니를 약 2년간 따라다녀 봤는데 그들은 상황인식과 분노가 매우 작위적이고 과장되었었다. 그래서 동의하기 어려웠는데 그 586 운동권들의 상황인식은 지금도 과거 40년전과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7. 설사 그들이 선의에 의해 운동을 했다 하더라도 이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혼탁해지고 상황이 변하는 것이다. 그들은 낡아빠진 민폐세력이 되어 버렸다. 아니 대한민국을 갉아먹는 주적이 되었다. 북한과 함께.
18. 우파의 공로는 축소되어 있었고 좌파의 공로는 지극히 과장되어 있었다.
19.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가 피땀흘려 돈을 벌어서 집안을 일으키고 일가친척을 다 도와줬는데 룸싸랑 가서 하룻밤 실수를 했다고 해서 그 아버지에게 돌을 던져 사형을 시키는 꼴이다. 그렇게 그 거위를 죽이면 니들은 이제 뭐 먹고 살래?
20. 한국의 모든 안좋은 것들은 다 그 근원이 유교 성리학과 조선의 왕정체제에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이상은 좋으나 인간의 현실적 감정과 이기심을 간과했다. 공산주의도 마찬가지다. 이상은 좋지만 현실인식이 너무 추상적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실패했다. 이러한 공상적 망상적 공산주의가 유교와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이 북조선의 유교적 공산주의다.
21. 우리는 지금까지 완전히 거짓된 역사를 배워왔다. 마치 김일성이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모래로 쌀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북한 교과서에 실려 있는 것처럼, 우리 남측도 그에 못지 않은 전설을 많이 만들어 왔다.
급기야 우리 남쪽도 수령님을 모시게 되었으니 과연 조선은 하나다.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로구나.